
미국 월스트리트는 한국 자본에게 철저한 '원정 경기'다. 현지 네트워크와 정보력이 부족한 한국 금융사가 미국 본토에서 직접 사모펀드를 세우고 굴리는(GP) 것은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동반하는 도전으로 통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사모펀드(Form D) 및 투자자문사(Form ADV) 공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이 당연한 업계의 상식대로 대다수 한국 운용사들은 직접 운용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철저히 '선택과 집중'을 택하고 있었다. 단 한 곳, 극히 이례적인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미래에셋만 제외하면 말이다.
'원정 경기'의 합리적 생존법: 간접 투자와 핵심 역량 집중
데이터는 한국 금융사들의 지극히 합리적이고 계산된 생존법을 보여준다. 삼성자산운용 뉴욕 법인은 무려 10조 6,600억 원($82억)에 달하는 거대 자산을 굴리지만, 현지 사모펀드 운용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리스크가 큰 사모펀드 대신 자신들이 뚜렷한 강점을 지닌 한국 채권 위탁운용과 미국 ETF 자문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글로벌 자본을 대하는 업계의 보편적 방식이다. 공시 문서에 수백 번 이름이 등장하는 NH투자증권이나 한국투자파트너스 역시 블랙스톤 등 현지 탑티어 운용사의 펀드에 돈을 얹는 투자자(LP)로만 참여한다. 굳이 직접 운전대를 잡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글로벌 운용사들의 노하우를 활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심지어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각각 2018년과 2022년에 아예 SEC 등록을 철회하며 현지 진출 전략을 수정했다. 한화자산운용 역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1,530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 단 1개만 운용하며 극도로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상식을 깬 폭주인가, 무리한 확장인가
하지만 미래에셋의 공시 데이터는 이 모든 상식을 벗어나 있다. 모두가 리스크를 피하거나 안전한 간접 투자에 머물 때, 미래에셋은 무려 22개 법인을 세워 사모펀드를 발행했고 누적 1조 4,250억 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미국 내 총 운용자산은 7조 5,400억 원($58.3억)에 달한다.
특히 이들의 확장 속도는 2026년 봄에 이르러 더욱 가팔라졌다. 기존 주력 펀드였던 '프로젝트 플래닛'(약 4,800억 원)에 이어, 신규 '가이아(Gaia)' 시리즈가 폭발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2024년 5월 첫 펀드를 신고한 가이아 시리즈는 2026년 3월 한 달에만 약 1,445억 원(1억 1,118만 달러) 규모의 세 번째 펀드와 약 290억 원(2,226만 달러) 규모의 두 번째 펀드를 동시에 SEC에 신고했다. 가이아 시리즈 3개만으로 전체 모집액의 21%(약 2,990억 원)를 차지할 만큼 공격적이다. 단 5명의 기관 투자자가 평균 289억 원씩 베팅한 결과다.
SEC 사모펀드 신고서는 모집액과 투자자 수 등 외형만 공개할 뿐, 수익률이나 세부 투자 대상은 명시하지 않는다. 미래에셋이 제출한 21개 펀드 중 19개는 단순 "집합투자기구"로만 분류돼 있어, 개별 펀드의 성과는 이 공시만으로 알 수 없다. 실제로 미래에셋 미국법인의 최근 감사보고서를 보면 자산과 순이익 등 전체 실적이 크게 팽창했으나, 이 실적에는 ETF(Global X) 및 기타 자문 업무 수익이 함께 포함돼 있어 22개 사모펀드만의 기여분은 별도로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미국 시장을 대하는 한국 자본의 전략은 뚜렷하게 나뉘었다. 대다수 금융사가 간접 투자나 위탁 운용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한 반면, 미래에셋은 다수의 펀드를 직접 운용(GP)하는 정면 승부를 택하며 외형적 성장을 이뤄냈다. 1.4조 원이 투입된 22개의 사모펀드 라인업이 미국 법인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향후 펀드 청산과 실제 수익률 지표를 통해 입증되어야 할 과제다.
본 기사는 SEC 사모펀드 신고(Form D) 및 투자자문사 등록 서류(Form ADV)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운용자산은 각사 등록 서류 기준(미래에셋 $58.3억, 한화 $40.0억, 삼성자산운용 $82억). 원화 환산은 1달러=1,300원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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