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4 SATSATURDAY, APRIL 4, 2026

"비밀번호 없는 세상" 꿈꾸던 아이리시스, 거대한 산업의 파도 앞에 존폐 위기

"비밀번호 없는 세상" 꿈꾸던 아이리시스, 거대한 산업의 파도 앞에 존폐 위기

"비밀번호 없이도 안전하게 결제와 보안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안면 및 홍채인식 기반의 도어락과 보안 USB 등을 야심 차게 선보였던 생체인식 전문기업 아이리시스(Irisys)가 결국 존폐 위기에 섰다. 한때 국방부 납품과 해외 수출을 이뤄내며 촉망받던 이 강소기업의 몰락은 단순한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글로벌 인증·보안 산업의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중소기업이 단일 솔루션만으로 돌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로 남게 됐다.

■ 끝없는 실적 추락과 재고의 늪… 5명만 남은 조직

피치덱에 따르면 아이리시스는 2016년 산업은행으로부터 추정 기업가치 300억 원에 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누적으로 40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으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최근의 재무 지표와 운영 상황을 살펴보면 회사의 기초 체력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급격한 실적 악화다. 2018년만 해도 매출 55억 원에 1.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2020년 매출 32억 원에 영업손실 -4.6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하여 2022년 매출 12억 원(영업손실 -23억 원)으로 급감했고, 2024년에는 매출이 5.2억 원(영업손실 -2.2억 원)까지 쪼그라들며 사실상 시장에서 도태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금 흐름의 악화를 보여주는 재고자산회전일수(DIO)는 치명적이다. 2020년 83일이던 DIO는 2022년 283일로 급증하더니, 2024년에는 무려 364일까지 늘어났다. 만들어 놓은 제품이 1년 내내 창고에 쌓여 팔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회사의 규모 역시 급격히 축소되어, 2023년까지만 해도 20여 명에 달했던 직원은 2026년 1월 기준 단 5명으로 줄어들며 사실상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했다.


■ ‘인식’ 중심에서 ‘AI 방어(라이브니스·딥페이크)’로

아이리시스가 어려움에 부닥친 가장 큰 산업적 배경은 글로벌 생체인식 시장의 가치 창출 영역이 이동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누가 지문, 얼굴, 홍채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느냐"가 핵심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AI 시대의 고도화된 위조·합성·계정탈취 공격을 더 잘 막아내느냐"로 시장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옮겨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의 최근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Biometric Update와 Goode Intelligence는 생체인식 기술 자체를 넘어 '2025년 얼굴 라이브니스(Face Liveness) 시장'과 '2025년 딥페이크 탐지 시장' 보고서를 별도의 핵심 산업으로 분류해 다루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 탐지는 2027년까지 대규모 공격에 대응하는 거대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보안 기업 Ping Identity가 2025년 생체인증 기업 Keyless를 인수하고, 이를 2026년 초 “AI 기반 스푸핑(spoofing) 및 사기(fraud) 대응” 강화와 연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생체정보를 단순히 대조하는 것을 넘어 사진이나 딥페이크 영상, 실리콘 마스크 등을 활용한 ‘비정상적 접근(Presentation Attack)’을 튕겨내는 라이브니스(Liveness) 방어 능력이 인증 시장의 핵심 경쟁력으로 격상된 것이다. 단일 홍채 및 안면 인식 기술에 머물러 있던 아이리시스는 이러한 ‘보안 및 방어 플랫폼’으로의 진화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다.

■ 생체 알고리즘의 OS 내장화와 패스키(Passkey)의 지배

스마트폰 등 대중 소비자를 겨냥한 인증 방식의 변화 역시 아이리시스와 같은 독립 하드웨어/알고리즘 업체의 설 자리를 앗아갔다. 과거에는 기업마다 독자적인 생체인식기기나 알고리즘을 도입하려 했으나, 현재 대중 시장은 '패스키(passkey) + 기기 내 생체인증(얼굴/지문) + 디지털 신원확인'으로 완벽히 수렴하고 있다.

패스키는 비밀번호를 대체하는 FIDO 표준 기반의 암호화 자격 증명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30억 개 이상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패스키의 핵심은 생체정보(얼굴, 지문 등)가 서버로 전송되지 않고 철저히 사용자의 '로컬 기기(스마트폰 등) 잠금 해제용'으로만 쓰이며, 서버에는 공개키(Public Key)만 남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생체인식 알고리즘은 애플(Face ID), 구글, 삼성 등 거대 IT 기업의 기기 및 운영체제(OS) 레벨에 기본적으로 내장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문이나 얼굴로 패스키를 통해 안전하게 웹사이트와 앱에 로그인할 수 있는 환경에서, 소비자와 기업들이 굳이 아이리시스와 같은 중소기업의 별도 홍채 인식 솔루션이나 값비싼 하드웨어를 구매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 커지는 홍채 시장, 그러나 과실은 글로벌 공룡의 몫

물론 홍채인식 시장 자체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홍채인식 시장 규모는 2024년 99억 1천만 달러에서 2030년 355억 7천만 달러로 연평균 23.4%의 고성장이 예상될 만큼 유망하다.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역설은 "홍채 시장이 크다"는 전망이 "홍채 전문 중소기업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홍채인식은 대중적인 스마트폰이나 일반 소비자 인증 수단에서 밀려난 대신, 공항, 출입국 관리, 정부 국가 ID, 방산, 고신뢰 출입통제 등 막대한 자본과 신뢰가 요구되는 B2G(기업-정부 간) 및 특수 고보안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지만, 이 거대한 파이의 과실은 탈레스(Thales), 아이데미아(IDEMIA), NEC 등 각국 정부 및 대규모 인프라망과 끈끈하게 연결된 글로벌 대형 보안 업체들이 독식하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거대 디지털 ID 플랫폼과 결합하거나 대규모 국가 사업을 수주할 만한 자본력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이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변방으로 밀려나는 철저한 소외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


■ 기술적 우위를 넘어선 '생태계의 벽'을 넘지 못한 한계

결국 아이리시스의 위기는 생체인식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나타난 필연적인 시장 재편의 결과물이다. "비밀번호 없는 세상"이라는 아이리시스의 초기 비전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 세상을 주도한 것은 단일 생체인식 솔루션 기업이 아니라, 기기 장악력을 무기로 패스키 생태계를 구축한 빅테크 플랫폼과 AI 딥페이크 방어 기술로 무장한 차세대 보안 기업, 그리고 국가급 인프라를 장악한 글로벌 생체보안 공룡들이었다.

우수한 홍채 및 안면인식 기술력 하나만으로 도어락과 USB를 팔아 생존하기에는 산업의 거대한 파도와 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변화가 너무나 빠르고 거셌다. 아이리시스의 존폐 위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기반 강소기업들이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겪게 되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동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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