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소멸시대 ②] "책이 아니라 시간을 뺏겼다"… 붕괴 부른 3대 뇌관](https://d1gl51xbrxoj65.cloudfront.net/uploads/2026/01/20/1768870537869-takbk8.webp)
쿠팡 로지스틱스 매출 3.8조 급성장
'총알 배송' 공습에 서점은 '쇼룸' 전락
한국갤럽 조사서 독서, 등산·게임·유튜브에 밀려 7위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임대료·인건비 상승에 도매상 연쇄 부도까지… 안팎으로 옥죄는 '복합 위기'
2004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취미 2위는 '독서'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24년, 독서는 등산, 게임, 영상 시청에 밀려 7위로 추락했다. 사람들의 손에서 책이 떠난 자리는 스마트폰이 채웠고, 서점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 물류 센터가 들어섰다. 서점의 소멸은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다. 강력해진 물류 자본의 공습, 근본적으로 변해버린 여가 생활, 그리고 낙후된 유통 구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본지는 입수된 '서점의 소멸시대' 보고서와 업계 현황을 토대로 서점 생태계를 붕괴시킨 3대 악재를 심층 분석한다.
뇌관 1. '기울어진 운동장'… 물류 공룡 쿠의 공습, 책은 '생필품'이 되었다
서점 위기의 가장 거대하고 직접적인 원인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 구조와 물류 혁명이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설립된 쿠팡 로지스틱스 서비스는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2023년 기준 매출 3조 8,34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통의 물류 강호인 롯데글로벌로지스(3조 2,609억 원)와 한진(2조 4,374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CJ대한통운을 맹추격하는 이 '공룡'의 등장은 도서 유통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꿨다.
쿠팡, 예스24, 알라딘 등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오늘 주문 내일 도착'을 넘어선 '새벽 배송', '당일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제 소비자들에게 책은 서점에 가서 고르는 문화 상품이 아니라, 기저귀나 생수처럼 클릭 한 번으로 문 앞에 배달되는 '생필품'의 영역으로 편입됐다.
이러한 물류 혁신 앞에서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최저가를 확인하거나 책의 실물을 잠시 훑어보는 '쇼룸'으로 전락했다. 특히 대형 서점이었던 반디앤루니스(서울문고)의 몰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체 온라인몰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의 무료 배송 공세와 적립금 출혈 경쟁, 그리고 압도적인 배송 속도전에서 밀리며 온라인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서점의 본질이었던 '발견'과 '경험'의 가치는 '편의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무력했다.

뇌관 2. 사라진 독자들… "경쟁자는 옆 서점이 아니라 넷플릭스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의 실종이다. "책을 사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서점의 경쟁자는 더 이상 인근의 다른 서점이 아니라, 현대인의 시간을 독점하고 있는 넷플릭스, 유튜브, 웹툰 등 디지털 플랫폼이다.
한국갤럽의 취미 조사 결과는 이러한 세태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4년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취미 2위였던 독서는 2014년 6위로 밀려나더니, 2019년과 2024년 조사에서는 7위까지 떨어졌다. 2024년 1위는 게임이 차지했고, 운동, 등산, 영상 시청 등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시각적 자극과 즉각적인 도파민을 제공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가 여가 시간을 장악하면서, 긴 호흡과 능동적인 사유가 필요한 독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4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성인 연간 종합 독서율은 48.5%에 불과하다. 국민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 시장의 파이 자체가 쪼그라든 것이다.
여기에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가격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알라딘 중고서점 등 2차 시장으로 대거 이탈한 점도 신간 중심의 서점 생태계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새 책 같은 중고"를 반값에 살 수 있는 환경은 소비자에게는 축복일지 모르나, 정가를 고수해야 하는 일반 서점과 출판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부추겼다.

뇌관 3. 끊어진 허리, 치솟는 비용… 구조적 붕괴
매출은 급감하는데 비용은 치솟는 '가위눌림' 현상도 서점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지역 서점과 대형 서점 모두 임대료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춘천의 랜드마크였던 '광장서적'과 서울 은평구의 터줏대감 '불광문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주된 이유도 결국 누적된 적자와 감당하기 힘든 고정비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유통 생태계 내부의 붕괴다. 출판사와 서점을 잇는 '허리'인 도매업체의 연쇄 파산은 서점업계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2021년 업계 2위 송인서적의 파산에 이어, 2025년 3월 북플러스의 파산, 그리고 9월 북플러스의 주요 거래처인 북스리브로의 파산은 예견된 참사였다.
이들의 파산 배경에는 수십 년간 업계에 만연했던 '어음 결제'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서점이 책을 외상으로 받고 판매 대금을 수개월 뒤 어음으로 결제하는 방식은, 시장이 성장할 때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윤활유였으나 불황기에는 연쇄 부도를 일으키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 감소로 현금이 돌지 않자 도매상이 먼저 쓰러지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영세 출판사와 잔존 서점들에 전가되는 '도미노 붕괴'가 현실화된 것이다.
세계적 추세… 미국 서점 매출, 전성기 대비 '반토막'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입수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오프라인 서점 시장 역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서점 매출은 2007년 약 17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0년에는 65억 달러 수준까지 급감했다. 팬데믹 이후 약간의 반등세가 있었으나, 2024년 기준 여전히 전성기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이 '멸종 위기종'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서점의 위기는 경제적 효율성(온라인/물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디지털 콘텐츠), 그리고 낙후된 산업 구조(어음/고비용)가 복합적으로 얽힌 난제다. 물류 자본의 압도적 효율성 앞에 문화적 공간은 설 자리를 잃었고, 스마트폰의 불빛 아래 종이책은 잊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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