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 플래시 구매비 올해 250억달러 추정, 작년의 네 배 넘어
인텔은 PC 부진·재고 조정에 공장 사고 겹쳐 실적 전망 악화
샌디스크 이익률은 고공행진…AI 서버와 소비자 기기의 구매력 격차
애플이 올해 플래시 메모리를 사는 데 작년의 네 배가 넘는 돈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저장장치를 대거 확보하면서, 대량 주문을 무기로 가격을 낮춰 온 애플도 공급사의 가격 인상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메모리 업체의 호황이 스마트폰과 PC 업계에는 원가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작년 60억달러로 사들였던 것과 비슷한 양의 플래시를 올해 확보하는 데 약 250억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WSJ는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의 분석을 인용해 플래시 구매의 중심이 애플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로 옮겨갔다고 전했다. 더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고객이 등장하면서 부품 공급사와 완제품 업체 사이의 협상 구도가 바뀐 것이다.
애플보다 커진 서버 고객…용량 장사 이익도 압박
애플과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플래시 구매 규모는 불과 2년 사이 역전됐다. WSJ가 인용한 테크인사이츠 분석에 따르면 당시 애플의 구매량은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구글을 합친 것의 약 두 배였지만, 지금은 이들 기업이 애플의 두 배를 사들인다. WSJ는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이 올해 더 높은 가격을 약정하는 장기 공급계약을 키옥시아와 맺었다고 전했다.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플래시 가격이 올라도 투자를 이어갈 여력이 있다. 전체 데이터센터 구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회계상 비용을 여러 해에 걸쳐 나눠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사들은 물량과 가격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는 서버 고객과의 계약을 늘리고 있다.
애플의 수익성이 높은 저장 용량 추가 판매도 영향을 받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폰 17 프로의 저장 용량을 두 배로 늘릴 때 소비자가 낸 추가 금액은 200달러였는데, 이에 들어가는 애플의 부품 원가는 당시 15달러에서 최근 66달러로 뛰었다. 추가 용량 판매에서 남길 수 있는 이익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가격 인상은 비용 부담을 덜어주지만 소비자의 교체 주기를 늦출 수 있다. WSJ는 애플이 최근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을 올렸고, 아이폰 가격은 평균 13% 상승했다고 전했다. 메모리를 더 싸게 사서 이익을 지키던 회사가 이제는 소비자가 받아들일 가격과 판매량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인텔, 데이터센터는 성장…PC는 재고 조정 가속
인텔의 실적에서는 서버와 PC 시장의 온도 차가 드러났다. 데이터센터·AI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8% 늘어난 73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PC 사업을 포함한 클라이언트·피지컬 AI 부문 매출은 81억달러로 5% 줄었다.
다음 분기 전망은 시장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인텔이 제시한 매출 전망은 150억~160억달러로, 중간값 기준 시장 예상보다 약 9% 낮았다. 조정 주당순이익 전망도 0.25달러에 그쳤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PC 제조사의 원가를 밀어올리는 동시에 소비자 수요를 압박하고 있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부품 비용 상승과 수요 부진을 들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PC 시장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는 완제품 업체들이 판매 속도에 맞춰 재고를 적극적으로 줄이면서 최근 두 달간 PC 조정이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인텔에는 생산 차질도 겹쳤다. 회사는 이스라엘 키르얏갓 공장 사고가 4분기 매출에 약 3억달러, 이익률에 약 2%포인트의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추산했다. 탄 CEO는 첨단 패키징 기술인 EMIB에 필요한 유기기판 부족도 생산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PC 업체들이 메모리 구매비를 줄이려고 생산과 재고를 조정하면 중앙처리장치(CPU) 주문에도 부담이 전해진다. 인텔은 고객의 구매 조절에 대응하는 동시에 서버용 제품의 생산 병목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완제품 시장의 수요 둔화와 첨단 부품의 공급 부족이 한 회사의 실적에 함께 반영되고 있다.
삼성 안에서도 갈린 실적…메모리 호황과 스마트폰 적자
삼성전자는 메모리 공급사와 스마트폰 제조사를 함께 보유해 두 시장의 손익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다. 메리츠증권은 3분기 메모리 사업 영업이익을 108조원으로 분석한 반면, 스마트폰을 맡는 모바일경험(MX) 사업은 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했다. 반도체의 호실적 속에서도 완제품 사업의 수익성 부담이 이어졌다.
메리츠증권은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는 가운데 내년에도 판매가격 상승과 두 자릿수 출하량 감소를 예상했다. 서버 고객은 AI 인프라를 확보하려고 지출을 늘리지만, 소비자는 새 스마트폰 구매를 미룰 수 있다. 부품값 상승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기기 업체의 부담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모바일 메모리의 가격 압박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메리츠증권은 생산 전환과 고급 스마트폰용 부품 재고 부족을 근거로 내년 1분기 모바일 메모리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 업체들은 원가 절감과 운영 효율 개선을 병행하면서 제품별 가격과 저장 용량을 조정해야 하는 처지다.
샌디스크는 높은 이익률…PC 줄어도 저장 용량 증가
메모리를 판매하는 쪽에서는 데이터센터 수요가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샌디스크의 2027회계연도 1분기 매출은 약 110억달러, 조정 매출총이익률은 85.1%를 기록했다. 데이터센터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61% 늘었다.
샌디스크 경영진은 장기 공급계약을 원하는 수요가 2030년 직전까지 공급능력을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계약 논의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다른 기기 제조사에도 같은 형태의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고객이 늘면서 공급사의 가격 협상력이 유지되고 있다.
PC 판매 감소가 NAND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기기당 저장 용량 증가로 일부 상쇄될 전망이다. 샌디스크는 내년 PC 출하량이 한 자릿수 초반 감소하더라도, PC용 NAND 수요는 총용량 기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고급 제품의 비중이 높아지고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도 커지기 때문이다. 관건은 완제품 업체들이 늘어난 메모리 구매비를 판매가격에 얼마나 반영하면서도 소비자의 교체 수요를 지킬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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