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나버린 보복 소비, 1세대 명품 플랫폼의 씁쓸한 몰락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이른바 '보복 소비' 열풍을 타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온라인 명품 플랫폼 시장이 매서운 혹한기를 맞고 있다. 엔데믹 이후 고물가와 내수 침체가 겹치면서 명품 수요는 급감했고, 출혈 경쟁을 벌이던 플랫폼들은 심각한 구조조정 국면에 내몰렸다.
업계의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명품 플랫폼 '발란'의 파산이다. 발란 이전에도 캐치패션을 운영하는 스마일벤처스 등의 파산이 있긴 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발란의 회생과 파산이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때 기업가치 3,000억 원을 평가받으며 유니콘을 넘보던 1세대 플랫폼 발란은 무리한 외형 확장 속에서 유동성 경색을 이기지 못해 입점 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고 시장에서 쓸쓸히 퇴출당했다.
발란과 함께 1세대 트로이카로 불리던 머스트잇과 트렌비의 상황도 암울하다. 이들 역시 5년 연속 적자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머스트잇은 누적된 손실과 유동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강남구 신사동 사옥을 매각한 뒤 도산대로 인근의 공유 오피스로 본사를 축소 이전했으며, 트렌비 또한 지난해 매출이 반토막 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품 커머스 시장이 CR3(상위 3개사 시장점유율) 기준 고도로 집중화된 시장인 만큼, 상위 벤더들의 파산과 경영난이 명품 이커머스 생태계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화려한 외형 성장 뒤에 숨겨진 젠테의 '자본잠식' 그림자
1세대 플랫폼들의 몰락 속에 반사이익을 얻으며 업계 1위로 급부상한 3세대 명품 플랫폼 '젠테(jente)' 역시 겉보기와 달리 심각한 재무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0년 정승탄 대표(지분율 64%)가 자본금 1억 원 남짓으로 설립한 젠테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현지 330여 개 부티크와 직접 계약을 맺고 상품을 소싱하는 '100% 직소싱' 모델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2020년 18억 원이던 매출을 2023년 488억 원, 2024년 537억 원까지 끌어올리며 4년 만에 30배 가까운 괄목할 만한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젠테는 이 같은 성장세를 무기로 2022년 인터베스트, KB인베스트먼트,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추정 기업가치 450억 원에 9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으며, 이어 2023년에는 동문파트너즈 등으로부터 23억 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의 재무 상태는 이미 곪아 터진 상태다. 중간 마진을 없애겠다는 직소싱 구조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재고 부담과 물류 고정비 증가를 불러왔고, 이는 2021년 9억 원, 2022년 14억 원, 2023년 53억 원, 2024년 52억 원 등 연속적인 수십억 원대 영업손실로 직결됐다. 그 결과 젠테의 2024년 기준 자본총계는 자본금보다 적은 1억 9,462만 원에 불과해 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급기야 외부감사인인 호연회계법인은 2024년 감사보고서를 통해 젠테의 계속기업 존속 능력에 심각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호연회계법인은 "유동부채는 유동자산을 239억을 초과함에 따라, 유동성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라며 젠테의 유동성 위기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바닥난 현금성 자산, '사옥 매각'이라는 마지막 보루마저 흔들
현재 젠테를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운영자금의 심각한 고갈이다. 유동부채는 약 396억 원에 달하지만, 젠테가 손에 쥐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억 원 남짓에 불과하다. 특히 유동자산(약 157억 원)의 대부분이 재고자산으로 묶여 있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현금자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미지급금도 2023년 약 8억 원에서 2024년 약 150억 수준으로 20배 가까이 폭증하며 사실상 서비스 운영상의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벼랑 끝에 몰린 젠테는 마지막 생명줄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옥(젠테빌딩)을 230억~250억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한파와 고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반년이 넘도록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젠테의 전체 부채가 400억 원(유동부채 396억 등)에 육박하는 데다, 해당 사옥에 이미 국민은행으로부터 192억 원의 대출이 잡혀 있어 건물을 원가에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회사가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은 최대 6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옥 매각만으로는 재무 안정화에 바로 접어들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인 이유다.
'발란 사태' 이후 벤처캐피탈(VC) 업계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젠테가 추진하던 시리즈 B 라운드 투자 유치마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거나 중단된 상태다.
직원 수 급감과 서비스 붕괴... 소비자 피해로 번지는 위기
현금이 마르면서 회사 내부의 균열도 가속화되고 있다. 젠테는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C레벨 임원을 포함한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2025년 82명까지 유지되던 직원 수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6년 1월 기준 30명까지 급감했다.
운영자금의 턱없는 부족과 직원 수의 급감은 곧바로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직결되며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젠테를 이용한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배송 준비 중'만 뜬다", "고객센터가 완전히 먹통이어서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환불이 지연되고 있다"는 호소와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여기에 젠테가 가장 큰 차별점으로 내세웠던 '100% 부티크 직소싱을 통한 가품 원천 차단'이라는 마케팅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젠테에서 판매된 프라다 선글라스가 가품으로 적발되어 환불 조치된 데 이어, 캐나다구스 패딩까지 가품 의심 논란에 휩싸이면서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배송 지연, 환불 지연, 고객센터 연락 두절, 대규모 인력 이탈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발란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며 파산하기 직전 보였던 전조 증상과 유사해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무산된 투자 유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속에서 젠테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업계에 또 한 번의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제2의 발란 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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