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4 SATSATURDAY, APRIL 4, 2026

하이볼에 밀리고 거품 꺼진 수제맥주… '사워맥주 선구자' 와일드웨이브도 생존 기로

하이볼에 밀리고 거품 꺼진 수제맥주… '사워맥주 선구자' 와일드웨이브도 생존 기로

하이볼·일본 맥주 부활에 수제맥주 시장 반토막… 1세대 간판 기업들 줄도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 진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수제맥주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19년 일본산 불매운동의 반사이익과 코로나19로 인한 '홈술' 트렌드를 타고 2021년 1,520억 원 규모까지 팽창했던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엔데믹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최근 700억 원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업계를 이끌던 간판 기업들의 몰락은 현재 수제맥주 시장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곰표 밀맥주'로 누적 판매량 6,000만 캔을 돌파하며 시장 붐을 주도했던 1세대 수제맥주 기업 세븐브로이는 상표권 계약 만료 후 실적 악화에 시달리다 자회사가 파산 선고를 받았고, 코넥스 시장에서도 상장 폐지되었다. 도심 속 양조장 콘셉트로 성수동을 수제맥주의 성지로 만들고 100억 원대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공개(IPO)까지 추진했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역시 누적 결손금 140억 원을 떠안고 사실상 파산 수순에 돌입했다. 국내 수제맥주 1호 상장사인 제주맥주(현 한울앤제주) 또한 단 한 번의 흑자도 내지 못한 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권이 수차례 바뀌는 진통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제맥주 업계의 몰락 원인으로 복합적인 시장 환경 변화와 구조적 한계를 꼽는다. MZ세대의 주류 취향이 섞어 마시기 좋은 위스키와 하이볼로 이동했고, 불매 운동이 끝난 뒤 일본 맥주가 다시 큰 인기를 끌며 수제맥주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고물가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자체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대기업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위탁생산(OEM)이라는 저마진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도 뼈아픈 패착으로 지적된다. 살아남기 위해 맥주 생산 설비를 활용해 하이볼 시장으로 뛰어드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독일에서 품은 꿈, 김관열 대표가 개척한 '한국형 사워맥주'의 명성

수많은 수제맥주 업체가 난립하던 열풍 속에서도 부산의 '와일드웨이브'는 독보적인 길을 개척하며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 중심에는 2013년 맥주 양조사의 꿈을 안고 독일 베를린 브이엘비(VLB) 양조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던 김관열 대표가 있다.

유학 후 크래프트 맥주 기업에서 총괄 양조사로 실전 경험을 쌓은 김 대표는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오직 우리나라만의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동료들과 함께 와일드웨이브를 설립했다. 그는 수만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란 효모와 미생물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공기 중의 야생 효모와 유산균을 활용하는 국내 최초의 자연발효 기법을 도입하고, 부산 기장 딸기, 진해 벌꿀, 금정산성 산딸기 등 지역 특산물을 맥주에 접목했다.

그 결과물인 대표 사워맥주 '설레임'은 감귤, 오렌지, 레몬의 상큼한 풍미를 자랑하며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4년 연속 대상을 거머쥐었고, 와일드웨이브는 산미가 강한 '사워맥주'의 명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부산 영도에 컨템포러리 다이닝 바 '사우어 영도'를 여는 등 브랜드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는 듯했다.

혁신과 열정 이면의 차가운 현실… 인력 감축으로 버틴 '불황형 흑자'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력과 뚜렷한 철학으로 무장한 와일드웨이브 역시 수제맥주 산업 전반에 불어닥친 매서운 한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피치덱에 따르면, 와일드웨이브는 과거 외부로부터 8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2021년 투자 유치 당시 추정 기업가치는 70억 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재무 성적표는 수제맥주 시장의 침체기와 정확히 맞물려 추락했다.

2019년 12억 원이었던 매출은 2020년 10억 원으로 줄었고, 수제맥주 시장이 정점을 찍었다던 2021년에는 오히려 5.1억 원까지 반토막이 났다. 영업 손실 규모도 2019년 1.4억 원에서 2021년과 2022년 각각 3.9억 원, 2023년에는 4.2억 원(매출 6.3억 원)까지 불어났다.

2024년 들어 매출 7.8억 원, 영업이익 0.5억 원을 기록하며 힘겹게 흑자로 전환했지만, 이를 긍정적인 반등의 신호로 해석하는 이는 드물다. 이 흑자는 실질적인 매출 성장이나 구조적 경쟁력 회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판관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짜낸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2024년 당시 10여 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최근 3명까지 급감했다. 이처럼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장부상의 흑자를 만들어냈을 뿐, 3명의 직원으로 하락세인 매출을 다시 반등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제맥주 열풍에 취해 우후죽순 생겨났던 수많은 양조장들이 현재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과 장인정신으로 업계 1위에 올랐던 김관열 대표의 와일드웨이브조차 인력 감축이라는 극약처방으로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화려하게 비상했던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은 완전히 달라진 소비자들의 취향과 치열한 경쟁, 원가 부담이라는 이중, 삼중고 속에서 앞으로도 존폐의 기로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테스트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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