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 파랑. 알록달록한 색을 앞세운 ‘후루트링(Froot Loops)’은 오랫동안 미국 시리얼 시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 무지개색을 만들어온 재료가 바뀐다. 켈로그 시리얼의 북미 사업을 맡고 있는 WK켈로그는 6일(현지시간) 올해 말까지 모든 시리얼에서 인공색소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당초 목표였던 2027년 말보다 1년 앞당긴 일정이다.
후루트링과 애플잭스 등 새 제품은 과일·채소 주스와 그 밖의 식물성 원료로 색을 낸다. 새 제조법을 적용한 제품은 올해 안에 생산돼 소매업체로 출하된다. 다만 출하와 실제 판매 시점에는 차이가 있다. 더그 밴더벨데 WK켈로그 최고성장책임자는 새 제품이 매장 진열대로 넘어가는 시점을 2027년 초로 예상했다. 회사는 일부 시리얼 포장에 남아 있는 합성 산화방지제 BHT도 함께 없애기로 했다.
WK켈로그는 2023년 옛 켈로그가 분할되면서 북미 시리얼 사업을 넘겨받은 회사다. 지난해 9월 누텔라와 페레로로쉐로 유명한 이탈리아 식품기업 페레로에 인수됐다.
건강 논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색소 퇴출’
켈로그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소비자 취향의 변화다. 복잡한 화학 명칭보다 단순하고 알아보기 쉬운 원료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미 학교에 제공되는 제품을 인공색소 없이 만들고 있으며, 올해 1월부터 인공색소를 넣은 신제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전환 대상은 애초 전체 제품군보다 좁았다. 지난해 회사 집계로 전체 시리얼 매출의 85%가 이미 합성색소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에서 나왔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합성색소를 사용하는 제품의 매출 비중은 약 15%다. 다만 그 안에는 강렬한 색이 정체성인 후루트링과 애플잭스가 포함돼 있다. 매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브랜드 상징성이 큰 마지막 제품들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소비자 요구뿐 아니라 정부와 사법당국, 대형 유통업체의 압박이 겹쳐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4월 석유계 합성색소를 식품 공급망에서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발표 당시 목표는 2026년 말이었지만, 현재 FDA는 적색 40호, 황색 5·6호, 청색 1·2호, 녹색 3호 등 6종을 2027년 말까지 없애는 일정으로 식품업체들과 협의하고 있다. 다수 기업이 전환 목표를 2027년 말로 잡은 배경이다.
적색 3호는 별도로 사용 허가가 취소됐다. 다만 나머지 6종은 아직 일률적인 법적 금지 대상이 아니라 업계의 자발적 전환을 유도하는 단계다.
과학적 판단도 단순하지 않다. 캘리포니아주 환경보건위해평가국은 2021년 합성 식용색소가 일부 어린이의 과잉행동 등 신경행동 문제와 관련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FDA의 현재 설명은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근거는 없지만 일부 어린이는 민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용 기준에 맞춰 사용한 색소는 안전하다는 기존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인공색소 퇴출은 새로운 위해성이 확정돼 갑자기 이뤄진 조치라기보다, 불확실한 위험까지 줄이려는 정책 변화와 소비자 불안이 시장을 움직인 결과에 가깝다.
켈로그를 겨냥한 직접적인 압박도 있었다. 옛 켈로그는 2015년 후루트링과 애플잭스 등을 포함한 자사 시리얼에서 2018년 말까지 인공색소와 인공향료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대상에는 일부 스낵바와 에고(Eggo) 냉동식품도 포함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대표 제품에는 이후에도 합성색소가 남았다.
이행되지 않은 과거 약속은 2024년 시위의 직접적인 명분이 됐다. 시민단체는 미시간주 본사 앞에서 인공색소와 BHT 제거를 요구하며 40만건이 넘는 서명을 전달했다. 지난해 8월에는 텍사스주 법무장관과 2027년 말까지 인공색소를 영구히 없애겠다는 자발적 준수 확약을 맺었다. 이번 발표는 두 번째 약속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정을 1년 앞당겼다는 의미가 있다.
유통업체의 움직임은 더 현실적인 압박이었다. 미국 대형 할인점 타깃은 지난 5월 말을 기한으로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모든 시리얼에서 FDA의 배치 인증을 받는 ‘인증 합성착색료(certified synthetic colors)’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자체 브랜드뿐 아니라 전국 단위 제조사 브랜드까지 포함한 기준이다. FDA의 업계 추적표에는 타깃이 전환을 완료한 것으로 등재돼 있다.
월마트도 미국 자체 브랜드 식품에서 합성색소를 비롯한 30여개 첨가물을 내년 1월까지 빼기로 했다. 제조법을 바꾸지 않으면 주요 판매 채널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시리얼에서 음료·젤리·과자까지 번진 전환
인공색소 퇴출은 켈로그만의 선택이 아니다. 경쟁사 제너럴밀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시리얼의 인증 합성착색료를 올여름까지 없애고, 2027년 말에는 전체 미국 소매 제품으로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K-12 학교 급식용 제품은 지난 3월 목표보다 앞당겨 전환을 마쳤다고 밝혔지만, 전체 시리얼에 대해서는 8월 현재까지 별도의 완료 발표가 없다. 회사 상시 안내 페이지에도 여전히 ‘2026년 여름’이라는 기존 기한과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 함께 남아 있다.
네슬레USA는 지난 6월 미국 식품·음료 제품의 전환을 마쳤다. 캠벨은 음료와 과자, 크래커 등에서 색소를 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음료와 간식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펩시코는 게토레이 일부 제품의 인공색소를 올가을 없앨 예정이고, 크래프트하인즈는 젤오·쿨에이드·크리스털라이트 등 미국 제품 전체에서 2027년 말까지 합성색소를 제거한다. 허쉬도 졸리랜처와 트위즐러 등 제과 제품의 전환 시점을 2027년 말로 잡았다. 이제 ‘무색소’는 일부 유기농 브랜드의 틈새 전략이 아니라 대형 식품기업과 유통업체가 함께 움직이는 산업 표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업들이 택하는 방법은 제품마다 다르다. 색이 소비 경험에 중요하지 않으면 아예 빼고, 중요하면 과일·채소 주스나 향신료 추출물로 대체한다. 똑같은 색을 내기 어려울 때는 제품의 색 자체를 새로 설계하기도 한다. 크래프트하인즈는 불투명한 포장에 담겨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음료는 색을 없애고, 초록색을 재현하기 어려운 제품은 분홍색 계열로 바꾸는 방식을 시험하고 있다.
색을 빼면 맛도 달라질까
인공색소를 없앤다고 후루트링이 갈색 시리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켈로그는 식물성 원료를 조합해 기존의 여섯 가지 무지개색을 모두 재현했다고 밝혔다. 맛과 품질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폭넓은 소비자 시험을 거쳤고, 생산설비에도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천연색소가 합성색소만큼 다루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식물에서 얻은 색소는 빛과 열, 산소, 산도 변화에 따라 색이 흐려지거나 달라질 수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특히 선명한 파랑과 초록을 구현하고 오래 유지하는 작업을 어려운 과제로 꼽는다. 추출과 정제, 색 안정화 과정이 추가되면서 생산비와 유통기한 관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실제로 크래프트하인즈는 제품별로 두 가지 천연색소 배합을 함께 개발하고 수개월에 걸쳐 유통기한과 보관 조건에 따른 변화를 관찰한다. 매장 조명의 영향은 별도 장비를 이용해 1년 동안의 빛 노출을 7일로 압축하는 방식으로 시험하고 있다.
대체 원료의 선택지는 과거보다 넓어졌다. FDA는 지난해 홍조류에서 얻은 청색 원료를 시리얼 코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나비콩꽃 추출물의 사용 범위도 즉석 시리얼로 확대했다. 나비콩꽃 추출물은 파랑뿐 아니라 보라와 초록 계열을 구현할 수 있다.
색의 변화는 단순한 외관 문제가 아니다. 식품의 색은 먹기 전에 맛을 예상하게 만드는 강력한 신호다. 실제 향미가 같아도 색이 달라지면 소비자는 어떤 과일 맛인지 다르게 판단하거나 서로 다른 맛을 기대할 수 있다. 기대한 색과 실제 맛이 맞지 않으면 제품 평가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만 색이 맛의 ‘강도’까지 일관되게 바꾼다는 연구 결과는 확립되지 않았다.
실패 사례도 있다. 제너럴밀스는 2016년 트릭스 시리얼의 합성색소를 무와 강황, 과일·채소 주스 등으로 바꿨다. 그러나 파랑과 초록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고 전체 색감도 한층 탁해졌다. 일부 소비자가 “우울해 보인다”고 불평하자 회사는 이듬해 인공색소를 사용한 ‘클래식 트릭스’를 다시 내놓았다. 당시에는 천연색소가 맛에도 미세한 변화를 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켈로그가 이번 발표에서 “원래의 무지개색을 모두 유지한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성분표는 단순해지기를 바라면서도, 익숙한 브랜드의 모습과 맛까지 달라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회사가 색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천연 원료로 기존 색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서는 과거 트릭스 때와 같은 반발이 그대로 반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당시보다 활용 가능한 천연색소의 선택지가 넓어졌고, 켈로그도 모든 색을 찾은 뒤 소비자 시험과 설비 투자를 거쳐 일정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금 덜 선명하지만 성분은 단순하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도 늘었다. 색이 조금 달라지더라도 그 변화 자체가 건강과 투명성을 상징하는 새로운 브랜드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매장에서 본 색과 집에서 보관한 뒤의 색이 달라지거나, 생산 시기마다 색 편차가 커지면 후루트링과 애플잭스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 실제 맛이 같아도 색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맛이 변했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인공색소를 뺐다고 시리얼 자체가 곧바로 건강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류와 정제 곡물, 전체 영양구성은 별개의 문제이고, 천연색소라는 이유만으로 영양가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변화의 의미는 시리얼의 모든 건강 논란을 해결했다는 데 있지 않다. 아이들의 그릇을 채우던 강렬한 색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색을 만드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데 있다.
켈로그의 승부는 결국 성분표가 아니라 첫 숟가락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소비자가 예전과 같은 무지개색과 맛을 느낀다면 인공색소 퇴출은 식품업계의 새 기준으로 굳어질 수 있다. 반대로 “색도 맛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쌓이면, 식품기업들은 다시 한번 건강 이미지와 익숙한 즐거움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기업 재무 데이터 · 투자 리포트 · 창업 분석을 한 곳에서
Pitchdeck 체험하기매주 엄선된 뉴스,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매주 금요일 발행 · 1초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