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시·크립토닷컴·로빈후드 항소심서 나란히 패소…뉴저지주는 9월 3일까지 상고 결정
미국 프로풋볼팀이 7.5점 차 이상으로 이길지에 돈을 건다고 해보자. 카지노 스포츠북에서 돈을 걸면 스포츠 베팅이다. 그렇다면 칼시에서 같은 내용의 ‘예·아니오’ 계약을 사면 금융거래일까.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봤다. 거래 방식을 바꾸고 ‘계약’이라는 이름을 붙였더라도, 경기 결과를 맞히면 돈을 받고 틀리면 잃는 구조는 스포츠 베팅과 같다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 8월 28일 칼시의 스포츠 예측 상품을 금융상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칼시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등록했다는 이유만으로 네바다주의 도박 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이번 판단은 정식 재판이 끝나기 전 영업을 허용할지를 따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최종 결론은 아니다.
이번에 패소한 곳은 칼시만이 아니다. 법원은 칼시와 크립토닷컴 계열 거래소, 로빈후드가 제기한 사건을 함께 심리했다. 세 회사 모두 네바다주의 규제를 받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융거래”라는 칼시, “이름만 바꾼 도박”이라는 카지노업계
칼시는 자사 서비스를 스포츠 도박이 아닌 예측시장이라고 설명한다. 이용자가 회사와 직접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소 안에서 다른 이용자와 계약을 사고판다는 것이다. 칼시는 거래를 연결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기존 스포츠북은 다르다. 이용자가 스포츠북을 상대로 돈을 걸고, 스포츠북이 배당금을 지급한다. 칼시는 이 차이를 근거로 자사 상품이 도박이 아니라 금융거래라고 주장해 왔다.
법원은 거래 상대가 누구인지보다 무엇에 돈을 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경기 결과나 점수 차, 선수의 득점 여부를 맞히면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일반 스포츠 베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칼시를 감독하는 CFTC는 이번 소송에서 칼시를 지지했다. 하지만 CFTC의 현행 규정에는 게임과 관련된 계약을 거래소에 올릴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법원은 CFTC 지도부가 최근 다른 해석을 내놨더라도,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현재 적혀 있는 내용을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CFTC 등록만으로 미국 전역에서 스포츠 계약을 판매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칼시의 주장이 인정되면 스포츠 베팅이 금지된 주에서도 영업할 수 있다. 주마다 적용하는 사업자 면허와 세금, 이용 연령, 도박중독 방지 규정도 피할 가능성이 생긴다.
법원은 의회가 주정부의 스포츠 도박 관리 권한을 CFTC에 넘겼다고 볼 만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고 봤다. 쉽게 말해 금융당국에 한 번 등록했다는 이유만으로 각 주의 도박 규제를 모두 건너뛸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3대 0으로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만 모든 스포츠 계약이 무조건 도박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여지를 남겼다. 실제 사업이나 금융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포츠 계약을 활용하는 특별한 경우라면 금융상품으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법원과 의회로 번진 카지노업계의 반격
이번 판결은 예측시장의 성장을 경계해 온 카지노업계에는 반가운 결과다. 칼시가 2025년 처리한 거래의 90% 이상이 스포츠와 관련돼 있었고, 전체 매출의 95%도 스포츠 계약에서 나왔다. 스포츠 계약이 주별 도박 규제를 받게 되면 칼시의 사업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카지노업계는 소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네바다리조트협회가 네바다주를 지원했고, 미국게임협회(AGA)도 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인디언게이밍협회와 24개 부족도 주정부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지노산업이 발달한 주만 나선 것도 아니다. 뉴저지와 오하이오 등 39개 주와 워싱턴DC가 네바다주를 지지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성향의 주정부가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을 정치권의 진영 대결로 보기는 어렵다. 워싱턴에서는 로비 경쟁도 벌어졌다. 현지 로비 신고 자료를 집계한 보도에 따르면 칼시는 올해 상반기 직접 로비에 약 99만달러를 썼다. 외부 로비업체 비용까지 합치면 약 180만달러다. AGA도 같은 기간 직접 로비에 약 139만달러를 투입했다. 외부업체 비용을 포함하면 칼시와 비슷한 약 180만달러로 추산된다. 로비가 이번 판결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양측이 법원과 의회를 상대로 치열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의회에서도 스포츠 예측 계약을 막으려는 법안이 나왔다. 지난 3월 상원의원 3명이 스포츠 경기와 카지노 게임을 대상으로 한 예측 계약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7월에는 네바다주 하원의원들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내놨고, AGA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다만 기존 베팅업계가 모두 같은 편에 선 것은 아니다. 드래프트킹스와 팬듀얼은 예측시장에 진출하면서 AGA의 방침과 사업 전략이 맞지 않게 되자 2025년 11월 협회에서 탈퇴했다. 이후 파나틱스와 bet365도 협회를 떠났다. 예측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온라인 베팅업체들도 한편으로는 카지노업계, 다른 한편으로는 칼시와 경쟁하는 복잡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대법원에 먼저 갈 쪽은 칼시가 아닐 수도
이번 사건이 미국 연방대법원으로 간다면 먼저 상고장을 낼 가능성이 큰 쪽은 칼시가 아니라 뉴저지주다. 지난 4월 제3연방항소법원은 이번 판결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뉴저지주가 칼시의 스포츠 계약을 규제하기 어렵다며 칼시의 손을 들어줬다. 뉴저지주는 다른 지역 항소법원의 결론을 확인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대법원에 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대법원이 정한 뉴저지주의 상고 기한은 9월 3일이다. 네바다주와 뉴저지주 사건에서 서로 반대되는 판단이 나온 만큼, 뉴저지주가 대법원에 최종 판단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졌다.
칼시도 이번 판결에 대해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항소법원에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지, 곧바로 대법원에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결국 쟁점은 단순하다. 칼시의 스포츠 예측을 새로운 금융거래로 볼 것인지, 기존 스포츠 베팅과 같은 도박으로 볼 것인지다. 금융거래라면 연방정부의 관리 아래 미국 전역에서 영업할 수 있지만, 도박이라면 주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법원이 사건을 받아들이면 그 결과는 칼시 한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크립토닷컴과 로빈후드 등 스포츠 예측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의 사업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대법원이 판단하기 전에 CFTC가 관련 규정을 바꾸거나 의회가 새 법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빠르게 커진 예측시장이 기존 카지노산업과 같은 규칙을 적용받을지는 이제 미국 전체의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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