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촌 한옥 골목에서 향을 고르는 경험으로 알려진 향수 브랜드 그랑핸드.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의 감사보고서 표지에는 '제이에이치'라는 유한회사 이름이 적혀 있다.
이 회사의 장부에는 향수 판매 실적만큼 눈길을 끄는 숫자가 있다. 2025년 한 해 매출인 315억9000만원과 맞먹는 돈을 들여 토지와 건물을 샀다. 2024년에도 약 229억원을 썼다. 지난 2년간 사들인 부동산은 약 545억원어치다. 은행 차입에는 회사 부동산 담보와 대표의 개인 지급보증이 함께 등장한다.
그랑핸드 뒤에는 출자자 3명이 있다
그랑핸드를 운영하는 유한회사 제이에이치는 2020년 3월 설립됐다. 과거 상호는 유한회사 그랑핸드였으며, 본점은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25에 자리 잡고 있다. 정준혁 대표이사가 지분 50%를 보유하고, 김소형과 정이준이 각각 35%, 15%를 갖고 있다. 유한회사인 만큼 이들을 부르는 정확한 명칭은 주주가 아닌 사원·출자자다.
브랜드는 법인 설립에 앞서 서울 북촌에서 출발했다. 향수와 생활용 향 제품을 판매하며 동네마다 매장을 운영한다. 서교 매장에는 향을 고르는 공간 위층에 카페를 배치했다. 제품 판매와 매장에 머무는 시간을 한 공간에 묶은 구성이다.
왜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일까
유한회사는 소수 출자자가 회사를 운영하기에 적합한 형태다. 이사회 없이 사원총회와 이사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정관으로 지분 양도를 제한할 수도 있다. 출자자 3명이 지분 전부를 보유한 제이에이치의 구조는 이런 특성과 맞닿아 있다. 유한회사라는 형태가 소수 출자자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의사결정 절차를 간소하게 가져가는 데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한회사도 규모가 커지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이나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가운데 하나라도 500억원 이상이면 대상이 된다. 이보다 작더라도 자산 120억원, 부채 70억원, 매출 100억원, 종업원 100명, 사원 50명이라는 다섯 기준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외부감사 대상에 들어간다. 주식회사는 사원 수를 제외한 네 기준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된다.
제이에이치의 2024년 말 자산은 약 374억원, 부채는 약 127억6000만원이며 그해 매출은 약 274억8000만원이었다. 종업원 52명과 사원 3명은 인원 기준에 못 미치지만, 자산·부채·매출의 세 기준을 넘었다. 공시 수치에 법정 기준을 적용하면, 2024년 말 기준으로 외부감사 요건을 충족해 2025 사업연도부터 처음 감사를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매출만큼 부동산을 사들이고, 은행 차입도 늘렸다
2025년 제이에이치는 토지 매입에 249억819만원, 건물 매입에 67억1891만원을 투입했다. 합계 약 316억원으로, 같은 해 매출액 약 315억 원과 거의 같다. 2025년이 처음은 아니다. 2024년에도 토지 약 193억원, 건물 약 36억원어치를 새로 사들였다. 2024년 말 장부에 잡힌 토지·건물 잔액의 대부분은 그해 매입에서 비롯됐다. 2년 연속 수백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취득한 셈이다.
2025년 말 토지 장부금액은 약 442억원, 건물은 감가상각을 뺀 약 103억원으로 늘었다. 회사는 이 부동산을 임대 목적의 투자부동산이 아니라 직접 사용하는 유형자산으로 분류했다. 2025년 임대료 수입은 6000만원으로 매출의 0.2%에 그쳤다. 장부상 분류와 수입 구성을 보면 임대 수익이 주목적인 투자로 보기는 어렵다.
차입도 함께 늘었다. 회사는 2025년 연 2.5% 금리로 장기차입금 249억원을 새로 빌렸다. 이 차입에는 회사의 토지·건물 담보와 정 대표 개인의 지급보증 약 133억원이 함께 걸려 있다. 보유 부동산은 은행에 담보로 제공돼 있다. 채권최고액은 각각 298억 원과 100억원으로 합계 약 398억 원이다. 2025년 이자비용은 4억 원으로, 영업이익 약 168억원에 비하면 크지 않다. 두 은행의 공시 금리인 연 2.5%와 2.61%를 연말 차입금에 1년 내내 적용해도 이자는 약 9억원이다. 2025년 영업이익의 5% 수준으로, 현재 이익 규모에 견준 이자 부담은 가벼운 편이다.
부동산 매입은 회사의 자산 규모도 바꿔놓았다. 총자산은 2024년 말 374억원에서 2025년 말 759억원으로 뛰었다.
직접 판매로 쌓은 이익, 영업이익률은 53%
2025년 매출은 전년보다 약 15%, 영업이익은 약 21% 증가했다. 영업이익률도 50.4%에서 53.2%로 높아졌다.
연도 | 매출액 | 영업이익 | 영업이익률 | 자료 성격 |
|---|---|---|---|---|
2024 | 274.8억원 | 138.4억원 | 50.4% | 2025년 감사보고서 비교숫자·미감사 |
2025 | 315.9억원 | 168.1억원 | 53.2% | 2025년 감사보고서·한정의견 |
2025년에는 기초재고와 관련해 한정의견을 받았다. 재고를 보유한 회사의 첫 외부감사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로, 감사인이 선임되기 전 기초재고 실사에 참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2025년 매출원가는 약 31억원으로 매출의 10% 수준이다. 그랑핸드는 자사 매장과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도 활용해 왔다. 외부 유통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판매 구조가 높은 이익률의 배경 중 하나로 보인다. 다만 자사 판매에도 매장 운영비와 결제·플랫폼 수수료 등이 들어간다.
비용에서 눈에 띄는 항목은 광고선전비다. 2025년 광고선전비는 4227만원으로 매출의 0.13%였고, 2024년 5469만원보다 줄었다. 그렇다고 마케팅 비용 전체가 이 금액에 그친다는 뜻은 아니다. 매장 운영이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다른 계정에도 반영된다. 실제로 2025년 지급수수료는 약 29억원이었다.
커지는 향수 시장, 그랑핸드의 공간 투자는 힘이 될까
앞으로 지켜볼 대목은 부동산 투자가 경쟁이 치열해지는 향수 시장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지느냐다.
2024년 보도에 인용된 유로모니터 통계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21년 약 7011억원에서 2023년 약 9860억원으로 40.6% 커졌다. 같은 보도에서 2024년 니치 향수 시장 규모는 약 4477억원으로 추산됐다. 2021년보다 88.1% 늘어난 수치다. 당시 전체 향수 시장의 2024년 전망치는 1조831억원이었다.
성장하는 시장에는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경쟁자도 모여들고 있다. 바이레도는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판권 계약이 끝난 뒤 2024년 9월부터 푸치코리아를 통해 국내 사업을 직접 전개하기 시작했다. 국내 유통·패션기업들도 향수 브랜드를 늘렸다. 2024년 보도 기준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4개, LF는 11개 브랜드를 갖추고 있었다.
소수 출자자가 지분을 보유한 그랑핸드는 이런 경쟁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고객을 붙잡아야 한다. 자사 매장에서 향을 고르고 공간에 머무르게 하는 판매 방식은 그중 하나다. 매장이 제품을 파는 곳이면서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접점으로 작동한다면, 공간에 대한 투자는 판매 전략과 연결된다.
최근 2년간의 부동산 매입도 이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직접 사용할 공간을 소유하면 임대차 조건 변화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매장과 업무 공간을 장기적인 계획에 맞춰 운영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이는 자산 분류와 기존 매장 운영 방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그만큼 자금이 부동산에 묶인다는 부담도 따른다. 현재 영업이익에 견준 이자비용은 크지 않지만, 원금 상환과 차환은 별개의 과제다. 경쟁에 대응할 신제품 개발과 고객 확보에도 돈이 필요하다.
제이에이치의 다음 성적표에서 볼 것은 매출 증가율만이 아니다. 확보한 공간이 고객의 방문과 재구매를 늘리는지, 그 과정에서 높은 이익률과 차입금 상환 여력을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 부동산에 쓴 돈이 향수 사업의 경쟁력으로 돌아오는지에 이 투자의 성패가 달려 있다.
기업 재무 데이터 · 투자 리포트 · 창업 분석을 한 곳에서
Pitchdeck 체험하기매주 엄선된 뉴스,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매주 금요일 발행 · 1초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