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과 가성비 상품은 나란히 성장…백화점 1층 수입 화장품은 축소
한국 사회의 소득·자산 격차가 소비시장에서도 뚜렷한 무늬로 나타나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고가 사치재와 가격 경쟁력이 분명한 소비재·서비스가 동시에 성장하는 반면, 가격을 더 받을 만한 이유가 불명확한 중간 지대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샤넬과 나이키의 매출 역전이다. 최근 공시된 연간 실적 기준으로 샤넬코리아의 2025년 매출은 2조126억원으로 나이키코리아의 1조8,913억원을 앞섰다. 영업이익은 샤넬코리아 3,358억원, 나이키코리아 378억원으로 격차가 약 8.9배에 달했다.
다만 두 회사의 회계기간은 다르다. 샤넬코리아는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나이키코리아는 2024년 6월부터 2025년 5월까지의 실적이다. 나이키 본사의 2025 회계연도 글로벌 매출도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따라서 이 역전 하나만으로 한국의 소비 양극화를 입증하기보다는, 대중적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보다 최상위 명품 브랜드에 더 많은 돈이 몰리는 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국내에서 ‘에루샤’로 불리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한국법인 합산 매출도 2025년 약 4조9,900억원으로 사실상 5조원에 달했다.
다만 세 회사가 매년 예외 없이 성장한 것은 아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2023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가 2024년 이후 반등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2025년 매출이 16.7%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개별 브랜드의 등락은 있었지만 최상위 명품 3사의 합산 시장 규모는 장기적으로 커지고 있는 셈이다.
다이소·유니클로·메가커피도 두 자릿수 성장
반대편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성다이소의 2025년 매출은 4조5,363억원으로 전년 대비 14.3%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9.2% 늘어난 4,424억원을 기록했다. 생활용품에서 출발한 다이소는 화장품과 패션,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하며 초저가 소비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2025 회계연도 매출은 1조3,524억원으로 27.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81.6% 늘어난 2,704억원이었다. 에프알엘코리아의 회계연도는 매년 8월 31일 종료된다. 매출은 2023 회계연도 9,219억원에서 2024 회계연도 1조602억원, 2025 회계연도 1조3,524억원으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했다.
메가MGC커피를 운영하는 엠지씨글로벌도 2025년 매출 6,469억원을 기록했다. 엠지씨글로벌은 2025년 12월 기존 앤하우스에서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30.4% 늘었고 영업이익은 3.5% 증가한 약 1,114억원이었다.
매출 증가율에 비해 영업이익 증가율은 낮았지만 외형 성장세는 이어졌다. 다만 영업이익률은 2024년 21.7%에서 2025년 17.2%로 하락해, 점포 확대와 외형 성장에 따른 수익성 변화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명품 소비자와 가성비 소비자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소비자도 일상적으로 반복 구매하는 생활용품이나 의류·커피에는 가격을 따지면서,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방·시계·향수에는 큰돈을 쓸 수 있다.
백화점 1층에서 밀려나는 수입 화장품
이 과정에서 백화점 공간의 위계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백화점 1층은 수입 화장품 브랜드가 지키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화장품 매장이 다른 층으로 이동하고, 그 자리를 명품 주얼리와 패션 브랜드가 채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1층에 있던 일부 뷰티 브랜드가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그 자리에는 반클리프아펠·그라프·오메가 등 고가 주얼리와 시계 브랜드가 들어섰다. 롯데백화점은 지하 1층 뷰티관을 백화점 업계 최대 규모로 재구성했다.
갤러리아 압구정 명품관 웨스트도 1층 뷰티 섹션을 2층으로 옮기고 에르메스·쇼메·보테가베네타 등 하이엔드 브랜드를 배치했다. 화장품을 없앴다기보다는 백화점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의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이다.
브랜드 철수도 나타나고 있다. 에스티로더 계열 남성 화장품 브랜드 랩시리즈는 2026년 4월 갤러리아 광교점 영업을 종료했다. 남은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도 8월 철수가 예정돼 있어, 예정대로 영업을 종료하면 국내 백화점에서 사실상 전면 철수하게 된다.
다만 이를 수입 화장품 전체의 일제 철수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일부 브랜드는 지방 점포나 수익성이 낮은 매장만 정리하고 있으며, 클리니크·키엘 등은 백화점 의존도를 낮추고 올리브영·쿠팡·컬리 등으로 판매 채널을 다변화하는 성격이 강하다. 수입 화장품 기업 중에서도 매출이 증가하는 회사와 브랜드가 존재한다.
K뷰티 인디 브랜드의 품질 향상과 가격 경쟁력도 전통적인 수입 화장품에 압박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를 개별 브랜드 철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백화점의 공간 재편, 면세점 부진, 온라인 구매 확대, 본사의 글로벌 구조조정, 국내 유통계약 변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약국 브랜드 라로제는 왜 백화점으로 갔나
백화점 내 일부 전통 수입 화장품 브랜드의 입지가 좁아지는 가운데, 라로제처럼 매장을 빠르게 늘리는 프랑스 브랜드도 있다. 이는 수입 화장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단순한 예외라기보다 프랑스에서 통했던 브랜드 신뢰 형성 방식을 한국 유통구조에 맞춰 바꾼 사례에 가깝다.
프랑스 화장품 시장 전체가 약국 중심인 것은 아니다. 대형마트와 향수 전문점, 백화점, 온라인도 주요 판매 채널이다. 다만 더모코스메틱과 기능성 스킨케어 분야에서는 약국과 파라파마시가 제품의 안전성과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로제는 프랑스 리옹에서 약학을 공부한 두 약사가 2015년 설립한 브랜드다.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성분과 환경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확인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브랜드는 자연유래 성분과 친환경 포장을 내세우며 더모코스메틱과 일반 화장품 사이의 시장을 공략했다.
한국에서는 약국이 화장품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핵심 유통망이 아니다. 라로제는 이에 따라 프랑스 약국이 수행하던 신뢰와 상담의 기능을 한국에서는 백화점 매장을 통해 확보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로제는 2023년 6월 국내에 공식 진출했고, 2025년 2월부터 백화점 정규매장을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브랜드가 공개한 매장별 개점 일정에 따르면 2025년 25개 매장을 연 데 이어 2026년에도 출점을 이어가며 7월 말 기준 국내 유통망을 40여 곳으로 늘렸다.
국내 주요 제품 가격은 대체로 3만~5만원대다. 전통적인 수입 프리미엄 화장품보다는 낮지만 올리브영을 중심으로 판매되는 국내 인디 브랜드보다는 높은 가격대다. 라로제가 들어선 곳은 이 기사에서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로 그 중간 가격대다.
그런데도 매장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약사 창업자, 프랑스 약국 유통, 자연유래 성분 등 가격을 설명할 수 있는 비교적 분명한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 가격대 자체가 사라진다기보다, 소비자가 추가 가격을 지불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애매한 프리미엄’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패션 회사에서 ‘패션·뷰티 양축’으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 수입 뷰티시장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회사 중 하나다. 과거 수입 패션과 자체 의류 브랜드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니치 향수와 프리미엄 화장품, K뷰티 브랜드를 함께 확보하면서 패션과 뷰티를 양대 축으로 재편하고 있다.
회사는 2012년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화장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2018년에는 신세계가 운영하던 화장품 사업 자산을 넘겨받고 자체 브랜드 연작을 출시했다. 이후 메모·엑스니힐로·디에스앤더가 등 수입 향수 브랜드를 추가했다.
2020년에는 스위스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스위스퍼펙션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스위스퍼펙션은 단순히 국내에 수입·유통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직접 소유한 해외 브랜드다. 2021년에는 자체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뽀아레를 출시했다.
2023년에는 로라메르시에·돌체앤가바나 뷰티 등을 도입했고 2024년에는 로에베 퍼퓸을 추가했다. 같은 해 색조 화장품 브랜드 어뮤즈 지분 100%를 713억원에 인수하며 K뷰티와 젊은 소비자 시장도 강화했다.
배스앤바디웍스는 2024년 5월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유통권을 확보해 강남점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2025년 1월 신세계백화점으로부터 국내 사업권과 관련 자산을 넘겨받았다. 브랜드의 한국 진출은 2024년이고, 신세계인터내셔날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시점은 2025년인 셈이다. 2025년에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도 새로 도입했다.
핵심은 니치 향수다. 2025년 말 사업보고서 기준 딥티크는 백화점 35곳, 면세점 9곳, 기타 2곳 등 총 46개의 유통망을 운영했다. 산타마리아노벨라는 백화점 28곳과 면세점 5곳 등을 합쳐 35곳이었다. 바이레도는 14곳, 메모는 7곳, 로에베 퍼퓸은 11곳이었다.
향수는 기초화장품보다 기능과 가격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고, 향 자체가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품이다. 소비자가 심리적인 만족을 위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작은 사치’의 성격도 강하다. 일부 수입 기초화장품이 가격 경쟁력 높은 K뷰티의 압박을 받는 동안 니치 향수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모든 브랜드가 순조롭게 성장한 것은 아니다. 바이레도의 국내 유통망은 2023년 30곳에서 2024년 13곳으로 급감한 뒤 2025년 14곳을 기록했다. 바이레도 모회사인 스페인 뷰티기업 푸이그가 한국에 직접 진출하면서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10년 유통계약이 종료된 영향이다. 이후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신세계백화점과 면세점 등 신세계 관련 유통망에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수입 브랜드 사업의 구조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키워도 해외 본사가 직접 진출하거나 유통사를 변경하면 국내 사업자의 권리가 축소될 수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 향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연작·뽀아레·스위스퍼펙션·어뮤즈 등 자체 및 인수 브랜드를 함께 강화하는 이유다.
재무 숫자에도 이러한 변화가 드러난다. 코스메틱 부문 매출은 2023년 3,797억원에서 2024년 4,149억원, 2025년 4,552억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패션·코스메틱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5.1%에서 38.6%, 41.0%로 높아졌다.
회사도 인정한 “명품은 과감하게, 생필품은 가성비”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 국내 소비시장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명품과 같이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소비재는 과감히 소비하고, 생필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패턴이 일반화되면서 럭셔리 및 프리미엄 상품과 가성비가 뛰어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샤넬과 다이소가 동시에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백화점 1층에서 일부 화장품 매장이 이동한 자리에 고가 주얼리가 들어오며,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니치 향수와 화장품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확대하는 현상이 이 문장 안에 압축돼 있다.
앞으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모든 중간 가격대 상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가격을 더 지불해야 하는 이유가 불분명한 상품, 백화점 입점과 해외 브랜드라는 사실만으로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상품이 먼저 압박받을 수 있다.
반대로 최상위 브랜드처럼 강력한 상징성을 갖거나, 다이소·유니클로처럼 가격과 기능이 분명하거나, 라로제와 니치 향수처럼 특정한 출신 배경과 취향을 제공하는 브랜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소비시장의 재편은 단순히 명품과 저가 상품으로 양분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제 소비자는 더 비싼 상품을 살 때는 비싼 이유를 묻고, 저렴한 상품을 살 때는 가격 이상의 품질을 요구한다. 그 두 질문에 모두 답하지 못하는 ‘애매한 프리미엄’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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