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산층은 식비·주거비 부담 커…명품과 가성비 시장 동반 성장
한국 소비시장에서는 상반된 두 장면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명품이, 다른 한쪽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샤넬코리아의 2025년 매출은 2조126억원으로 나이키코리아의 1조8,913억원을 앞섰다. 두 회사의 회계기간이 달라 완전히 같은 기간을 비교한 수치는 아니지만, 국내 소비시장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다.
반대편에서는 다이소와 메가MGC커피, 유니클로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아성다이소의 2025년 매출은 전년보다 14.3% 증가했고, 메가MGC커피 운영사 엠지씨글로벌의 매출은 30.4% 늘었다. 에프알엘코리아가 운영하는 유니클로 역시 2025 회계연도 매출이 28% 증가했다.
명품과 가성비 브랜드의 성장을 한국은행이 직접 분석한 것은 아니다. 개별 기업의 실적에는 가격 정책과 상품 경쟁력, 매장 확대, 마케팅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다만 한국은행 조사국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두 편의 BOK 이슈노트는 고가와 저가 시장이 함께 커지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거시경제적 배경을 보여준다.
가진 자산이 다르니 소비할 수 있는 돈도 달랐다
BOK이슈노트 제2026-14호 ‘우리 경제 가계 양극화의 실태와 파급영향’은 한국 가계가 “자산 격차 심화와 소득 격차 재확대가 맞물린 복합 양극화”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자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5년 0.625로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상위 10% 가구가 보유한 순자산 비중도 2022년 43.0%에서 2025년 46.1%로 높아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자산 격차를 벌린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집을 보유한 가구는 가격 상승으로 순자산이 늘었지만, 무주택 가구는 주거비 부담과 높아진 주택 구입 비용을 동시에 떠안았다.
자산 격차는 소비의 구성까지 바꿨다. 2025년 조사에서 주거비와 식비가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순자산 상위 20% 가구가 41.8%였지만, 하위 20% 가구는 57.1%에 달했다.
자산이 적은 가구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먹고사는 문제와 주거비에 써야 한다. 남는 돈이 적은 만큼 상품을 고를 때 가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고자산 가구는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 명품과 여가, 문화생활 등 재량적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이 수치가 샤넬이나 다이소의 매출 증가 원인을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자산층에는 선택적 소비 여력이, 저자산층에는 가격을 따질 수밖에 없는 제약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시장의 동반 성장을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소득이 높아도 자산 사다리에 오르지 못하는 청년층
최근에는 자산 격차에 소득 격차까지 더해지고 있다.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힘입어 하락하던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2023년 0.323에서 2024년 0.325로 소폭 반등했다.
한국은행 연구진은 반도체를 비롯한 IT 제조업과 비IT 산업 사이의 성장 및 임금 격차를 배경으로 지목했다. 과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고용 형태가 소득 격차의 주요 축이었다면 최근에는 어느 산업에서 일하는지가 새로운 격차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는 서로를 강화한다. 고소득층은 저축과 투자를 통해 자산을 더 빠르게 축적할 수 있다. 축적된 자산은 다시 배당과 이자, 임대소득을 만들어 소득 격차를 벌린다. 반대로 자산이 적은 가구는 높은 주거비 때문에 저축과 투자에 사용할 돈이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경제적 위치가 특히 약해졌다.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하위 20%인 가구 가운데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7.9%에서 2025년 15.2%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소득은 중상위권이지만 자산은 하위권에 머무는 청년층도 늘었다. 해외에서 ‘헨리족(HENRY·High Earners, Not Rich Yet)’으로 불리는 계층이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는 순자산 1·2분위이면서 소득 3~5분위인 20~34세 청년층이 자산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확률이 최근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해서 버는 소득이 적지 않아도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 오르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들에게 가성비 소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주거비를 감당하고 미래의 주택 구입 자금을 모으기 위한 재무적 선택에 가까워진다.
고령층에 자산이 묶이는 현상도 자산 순환을 더디게 한다. 부동산은 고령층에 집중돼 있고, 60대 이상 내부의 순자산 지니계수도 0.63으로 20~30대 0.54, 40~50대 0.57보다 높았다.
고령의 부모가 고령이 된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이른바 ‘노노(老老)상속’이 늘어나면 주택 취득과 교육, 창업 등에 자금이 필요한 청년·중장년층으로 자산이 제때 이동하지 못한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재산을 남긴 사람 가운데 80세 이상 비중이 1989년 약 40%에서 2019년 70% 이상으로 상승했다.
주식자산 1만원 늘어도 소비는 130원
주가가 올라도 소비가 기대만큼 증가하지 않는 이유 역시 자산 분포에서 찾을 수 있다.
BOK이슈노트 제2026-10호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에 따르면, 가구가 보유한 주식자산 가치가 1만원 증가할 때 소비는 약 130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주식 자본이득에 대한 한계소비성향, 이른바 주식 자산효과가 1.3%라는 의미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주식자산 증가분의 3~4%가 소비로 이어졌다. 비교적 자산효과가 작은 일본도 2.2%로 한국을 웃돌았다.
한국의 주식 자산효과가 작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가계가 보유한 주식자산 자체가 많지 않다. 2024년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주식자산 규모는 한국이 77.3%로 미국 255.6%, 유럽 주요국 평균 183.9%에 크게 못 미쳤다.
그나마 보유한 주식도 상위 계층에 집중됐다. 전체 주식자산의 73.2%를 순자산 상위 20% 가구가 보유하고 있었다. 소득 상위 20%의 보유 비중도 64.5%에 달했다.
2020~2024년 연평균 주식 자본이득을 보면 순자산 5분위 가구는 평균 206만원이었지만, 나머지 가구는 10만~41만원에 그쳤다. 주가가 상승해도 다수 가계가 체감할 수 있는 자산 증가분은 크지 않았던 셈이다.
저소득·저자산 가구와 청년층은 자산이 늘었을 때 소비를 상대적으로 많이 확대하는 성향이 있다. 현금흐름이 부족한 만큼 자본이득이 발생하면 그동안 미뤘던 소비에 사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주식을 많이 보유한 고소득·고자산 가구는 이미 소비 여력이 충분해 자산이 추가로 늘어도 소비를 크게 확대하지 않는다. 소비 반응이 큰 계층은 보유 주식이 적고, 주식을 많이 가진 계층은 소비 반응이 작은 엇박자가 전체 자산효과를 낮추고 있다.
주식에서 번 돈은 부동산으로 향했다
두 번째 이유는 국내 주식의 수익을 지속적인 소득으로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1~2024년 국내 주식의 월평균 기대수익률은 0.09%로 미국의 0.53%에 크게 못 미쳤다. 반면 예상에서 벗어난 변동성은 미국보다 10% 높았다. 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기간도 한국은 평균 2.3개월로 미국의 3.1개월보다 짧았다.
주가가 올라도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소비를 늘리기보다 이익을 확정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국내 선행연구에서는 이익이 난 종목의 매도 확률이 손실 종목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선행연구에서 나타난 1.5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세 번째 이유는 주식에서 발생한 이익이 소비보다 부동산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가계 패널 분석에서 무주택 가구의 주식 자본이득이 1원 발생할 때 부동산 자산은 0.7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모든 무주택 가구가 주식 수익의 정확히 70%를 집을 사는 데 쓴다는 뜻은 아니지만, 주식 자본이득과 부동산 취득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다.
서울 주택 매입자의 자기자금 가운데 주식·채권 매각대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5년 5월 4.9%에서 2026년 1월 8.9%로 상승했다.
보고서의 분석 기간인 2011~2024년에는 주택의 월평균 기대수익률이 주식의 두 배 수준이었고 변동성은 8분의 1에 불과했다. 무주택 가구 입장에서는 주식 수익을 소비하기보다 주택 구입 자금으로 남겨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주식이 소비를 늘려주는 자산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집값이 오를수록 무주택 가구는 계약금과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게 된다. 한국은행은 이를 주택 구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제저축’으로 설명했다.
주가가 오를 때보다 내릴 때 소비 충격 컸다
최근에는 주식시장과 가계 소비의 연결이 강해질 조짐도 나타났다. 국내 주식 보유자는 2019년 말 612만명에서 2025년 말 1,442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청년층과 중·저소득층의 주식시장 참여도 확대됐다.
2025년 가계의 주식 자본이득은 펀드를 포함해 429조원으로 추정됐다. 2011~2024년 연평균 약 20조원의 22배에 해당한다. 다만 이 금액은 주식자산 변동액에서 순매입액을 뺀 추정치로, 실제 현금화한 차익뿐 아니라 보유 주식의 평가이익도 포함한다.
자산이 늘었을 때 소비 반응이 상대적으로 큰 청년층과 중·저소득층의 시장 참여가 계속 확대되면 국내 주식의 자산효과도 과거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위험도 함께 커진다. 한국은행 분석에서 주식자산 증가에 따른 소비 확대 효과는 상승기에 1.2%였지만, 하락기의 소비 감소 효과는 1.5%로 더 컸다. 가계는 주가가 오를 때는 이익을 일시적이라고 보고 소비를 조심스럽게 늘리지만, 떨어질 때는 지출부터 더 빠르게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
신용융자처럼 빚을 활용한 투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주가가 급락하면 자산 감소와 원리금 부담이 동시에 가계를 압박할 수 있다. 고자산층이 재량지출을 줄이고 청년층이 부채 상환을 위해 소비를 축소하면 주가 하락이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고가와 가성비 사이, 좁아지는 중간시장
두 한국은행 보고서가 샤넬과 다이소의 매출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명품을 사는 소비자와 가성비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정확히 두 집단으로 나뉜다고 볼 수도 없다.
다만 보고서의 숫자는 소비시장이 왜 양쪽으로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자산과 자산소득은 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청년·무주택 가구에는 주거비와 주택 구입을 위한 저축 부담이 쌓이고 있다. 고자산층에는 재량적 소비 여력이 남아 있지만, 저자산층은 필수재를 구매할 때조차 가격을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이 분명한 명품, 가격 대비 효용이 명확한 상품이 각각 선택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명품만큼 강한 브랜드를 갖지 못하고 가성비 상품만큼 저렴하지도 않은 중간 가격대는 소비자에게 선택받기가 어려워진다.
한국은행 연구진은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 자산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도하고, 주식시장이 더 넓은 계층의 안정적인 자산 형성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주식 자본이득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는 흐름을 줄이고, 가계의 장기 주식 보유 유인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명품과 가성비 시장의 동반 성장은 몇몇 브랜드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유행만은 아닐 수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차이, 청년층에 집중된 주거비와 부채 부담이 소비시장을 두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고가와 가성비 시장은 커지고 그 사이의 ‘애매한 프리미엄’은 설 자리가 좁아지는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두 BOK 이슈노트는 한국은행 조사국 연구진이 작성했으며, 보고서는 내용이 한국은행의 공식 견해가 아닌 집필자 개인의 견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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