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1.05 THUTHURSDAY, NOVEMBER 5, 2026

투자자 대신 은행을 찾았다…베리시가 4년 만에 매출 915억원 키운 법

투자자 대신 은행을 찾았다…베리시가 4년 만에 매출 915억원 키운 법

자본금 5천만원·지분투자 없이 4년 만에 매출 915억원…투자 대신 차입을 택했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보면 부드러운 착용감을 내세운 속옷 광고를 만난다. 여성 이너웨어 브랜드 베리시도 그렇게 소비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베리시를 운영하는 딥다이브는 2021년 설립 뒤 4년 만인 2025년 매출 915억원을 냈다. 자본금은 5,054만원이다. 기업데이터 플랫폼 피치덱의 투자이력과 대표 인터뷰를 보면 벤처캐피털의 지분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지분을 내주고 수백억원을 받는 흔한 스타트업 공식 대신, 이 회사는 왜 빚을 택했을까.

재고 150억원이 필요했다…답은 투자 대신 차입

속옷 장사는 팔기 전에 먼저 만들어 쌓아 둬야 한다. 이성은 딥다이브 대표는 2024년 공개 인터뷰에서 재고 계산법을 밝혔다. 매출 300억원을 내려면 재고가 약 150억원 필요하다고 역산했다는 것이다. 자금은 투자금 아니면 차입금인데, 먼 미래의 가치보다 당장의 매출과 이익에 강점이 있는 회사라 차입금을 받는 게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이 선택은 경영학 교과서와도 맞닿아 있다. 모딜리아니와 밀러는 1963년 논문에서 법인세가 있으면 부채가 기업가치를 높인다고 봤다. 이자가 비용으로 빠져 세금을 줄이기 때문이다. 마이어스와 마일러프의 자본조달순위이론은 한 걸음 더 나간다. 회사는 번 돈, 그다음 빚, 마지막에야 지분을 쓰며, 전망을 확신하는 경영진일수록 지분을 싸게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이 보이면 그 과실을 기존 주주가 다 가져가는 쪽이 낫다는 논리다. 딥다이브가 걸은 길이 꼭 그랬다.

그래서 돈은 빌렸다. 회사는 2022년 말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네 차례 매출파이낸싱을 썼다. 앞으로 들어올 매출을 담보로 운영자금을 먼저 받는 방식이다. 2024년 11월에는 사채 30억원을 발행했다. 기술보증기금 보증을 바탕으로 여러 회사의 채권을 묶어 발행하는 정책금융(P-CBO)에 편입된 사채다. 은행 차입도 늘었다. 차입금과 사채 합계는 2024년 말 70.8억원에서 2025년 말 174.7억원이 됐다.

2025년 광고선전비는 258.5억원으로 매출의 28.2%였고, 영업활동현금흐름은 70.5억원 흑자였다. 광고비는 전년 193.6억원보다 33.5% 늘었다. 그런데 매출 증가율 41.3%가 더 높았다. 광고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9%에서 28.2%로 오히려 내려갔다.

표 1. 딥다이브 연도별 매출·영업이익 (단위: 억원)

연도

매출

영업이익

2021

1.7

−0.2

2022

79.8

4.8

2023

293.5

17.9

2024

647.8

83.7

2025

915.5

96.9

출처: 피치덱, 감사보고서. 개별 기준. 2024년은 감사받지 않은 비교수치.

피치덱에 따르면 매출은 2022년 79.8억원에서 2023년 293.5억원으로 뛰었다. 2025년 매출은 915.5억원, 영업이익은 96.9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41.3%, 15.8% 늘었다. 2022년부터 4년 연속 영업흑자다.

쿠팡 대신 인스타그램, 샘플은 10번 넘게 고쳤다

이 대표는 속옷 쇼핑몰에서 일하다 창업했다. 대학 시절 미술품 대여 사업에 실패한 뒤 사용자 경험을 공부했다. 쇼핑몰로 들어오는 '브라렛' 검색을 보며 편하면서도 예쁜 속옷의 수요를 읽었다. 대표 제품 쿨핏 브라의 콘셉트는 '촉감주의'다. 와이어와 봉제선, 라벨을 없애 피부에 닿는 불편을 줄였다. 창업 초기에는 매달 여러 차례 고객 인터뷰를 했다. 샘플링은 대기업이 2~3회 하는 데 비해 10회 이상 했다는 게 대표의 설명이다.

파는 곳도 골랐다. 쿠팡에서는 상위 제품이 1만원대라 1위가 어렵다고 보고, 인스타그램과 인플루언서에 집중했다. 2024년에는 가수 청하를 브랜드 첫 모델로 세웠다.

온라인에서 자란 브랜드는 도산을 시작으로 성수·안국까지 플래그십 매장 3곳을 열었다. 회사는 플래그십 매출의 절반을 외국인 관광객이 올렸다고 밝혔다. 매장은 돈이 든다. 취득원가 기준 시설장치는 2024년 3.4억원에서 2025년 34.0억원으로 늘었다. 임차료는 6.4억원에서 25.9억원으로 증가했다. 직원 수가 증가하면서 급여도 42.3억원에서 65.6억원으로 커졌다. 판매수수료는 51.1억원에서 95.9억원으로 87.5% 뛰었는데, 외부 판매채널이 넓어진 영향으로 추정된다.

표 2. 딥다이브 주요 판관비와 매출 대비 비중 (단위: 억원)

계정

2024년

비중

2025년

비중

광고선전비

193.6

29.9%

258.5

28.2%

판매수수료

51.1

7.9%

95.9

10.5%

급여

42.3

6.5%

65.6

7.2%

운반비

42.0

6.5%

62.9

6.9%

지급임차료

6.4

1.0%

25.9

2.8%

출처: 감사보고서,피치덱.

그 결과 영업이익률은 12.9%에서 10.6%로 내려갔다. 광고비 비중은 줄었지만 수수료·임차료·급여 비중이 올랐다. 영업이익은 15.8% 늘었지만 매출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늘어난 비용은 주로 매장과 인력, 판매채널에서 나왔다.

속옷에서 라이프웨어로…다음 무대는 해외

베리시가 서 있는 자리는 넓어지고 있다.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지운 애슬레저 시장은 패션 업계가 소비 위축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홀로 커 왔다. 업계 추산으로 국내 시장은 2023년 약 1조원에서 2024년 1조570억원 수준이 됐다. 와이어를 뺀 속옷에서 출발한 베리시도 2024년 액티브웨어 '무브럭스'로 이 시장에 발을 들였다.

회사는 2025년 들어 이지웨어와 액티브웨어 매출 비중이 꾸준히 늘어 핵심 카테고리가 됐다고 밝혔다. 캐주얼 브랜드와 손잡고 아우터도 냈다. 입는 시간이 가장 긴 옷에서 시작해 하루 전체로 옷장을 넓히고 있다.

손님도 국경을 넘었다. 플래그십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이라는 건 앞서 본 대로다. 2024년 신설한 해외팀은 현지 온라인 채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2026년에는 새 플래그십과 함께 해외 오프라인 진출을 병행할 계획이다. 감사보고서에도 2025년 중국 항저우에 100% 자회사를 세운 사실이 적혀 있다.

2021년 매출 1.7억원이던 회사가 4년 만에 915억원이 됐다. 촉감 하나로 시작한 브랜드가 애슬레저와 해외라는 두 무대를 동시에 열었다. 지분을 지키며 여기까지 온 베리시가 다음 4년에는 어떤 숫자를 적을지, 지켜볼 만하다.

이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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