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인 주류 소비 감소 추세가 각국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영국에서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펍(Pub·선술집)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억만장자들이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건강을 중시하는 풍조와 회식 문화 변화로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과거 정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며 주류 산업의 지형도가 흔들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영국의 부호들이 맥주 한 잔을 사 마시는 대신, 펍 전체를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물가와 건강 트렌드 확산으로 영국 성인들의 주류 소비가 급감하면서 경영난에 처한 지역 펍들이 매물로 나오자,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융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로레타 로스차일드 여사는 런던 외곽 윌트셔에 위치한 펍 '세븐 스타즈(The Seven Stars)'를 인수했다. H&M의 대주주이자 자산 규모 250억 달러(약 33조 원)에 달하는 스테판 페르손, 하이네켄 가문의 샤를린 드 카르발류-하이네켄 등도 잇따라 지역 펍을 사들였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심각한 주류 소비 감소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기준 영국 성인의 주간 평균 음주량은 10.2잔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셸 드 카르발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성보다는 지역 사회의 구심점인 펍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100%' 커뮤니티 목적으로 인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통계청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제공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970년대 고도 성장기 당시 최대 16.8리터에 달했으나, 2023년에는 7.8리터 수준까지 떨어졌다. 과거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문화가 사라지고,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가 확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전환이라고 분석한다. 영국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은 펍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세 감면 패키지를 시사했으나,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알코올이 지배하던 사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영국의 펍이 억만장자들의 자선적 투자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려 애쓰는 동안, 한국의 주류 시장 역시 저도주와 무알코올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줄어드는 술잔만큼이나 변화하는 사회적 소통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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