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4 SATSATURDAY, APRIL 4, 2026

[안경 산업 분석 ①] "세계 4대 안경 생산지는 옛말"… 공룡 '에실로룩소티카'에 잠식된 시장

[안경 산업 분석 ①] "세계 4대 안경 생산지는 옛말"… 공룡 '에실로룩소티카'에 잠식된 시장

공룡 '에실로룩소티카'가 지배하는 세상 OEM 함정에 빠진 韓 안경산업
'글로벌 브랜드 전쟁'서 완패 佛 에실로·伊 룩소티카 합병 후 독주 체제
렌즈·테·유통망 '싹쓸이' 자이스·호야 등 기술력으로 저항, 구찌(케링)는 '독립 선언' 맞불

현대 안경 산업은 단순한 시력 교정 도구의 제조를 넘어, 거대 자본과 브랜드, 첨단 광학 기술이 집약된 '총성 없는 전쟁터'다. 대구 제3공단, 한때 '세계 4대 안경 생산지'로 불리며 쉴 새 없이 공장이 돌아가던 이곳의 영광은 빛바랜 지 오래다. 1946년 국제셀룰로이드(현 국제광학) 설립과 함께 태동한 한국 안경 산업은 1980년대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안경 산업은 중국의 물량 공세와 글로벌 거대 기업의 브랜드 파워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안경계의 포식자' 에실로룩소티카, 경쟁은 없다

전 세계 안경 산업의 지형도는 2018년, 역사적인 '빅딜'로 인해 완전히 뒤집혔다. 프랑스의 세계 1위 안경 렌즈 기업 '에실로(Essilor)'와 이탈리아의 세계 1위 안경테 기업 '룩소티카(Luxottica)'가 합병하여 탄생한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의 등장이다.

이들은 단순한 시장 1위가 아니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생태계 파괴자' 혹은 '완벽한 포식자'로 부른다. 2024년 기준 연 매출 265억 유로(한화 약 43조 5,000억 원)를 기록한 이 공룡 기업은 안경 산업의 모든 가치 사슬을 독점했다 .

1. 브랜드의 제국: 선글라스의 대명사 '레이벤(Ray-Ban)'과 스포츠 고글의 제왕 '오클리(Oakley)'가 모두 이들의 소유다. 이것만이 아니다. 샤넬, 프라다, 버버리,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등 백화점 1층을 장식하는 명품 브랜드의 안경과 선글라스 대부분이 에실로룩소티카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소비자는 다양한 브랜드를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돈은 한 곳으로 흐르는 구조다 .

2. 기술의 독점: 세계 최초의 누진 다초점 렌즈 '바리락스(Varilux)', 변색 렌즈의 대명사 '트랜지션스(Transitions)' 등 핵심 광학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안경테를 만드는 룩소티카가 렌즈 시장의 절반을 쥐고 있는 에실로와 합쳐지면서, 경쟁사들은 안경테와 렌즈를 조합하는 과정에서조차 이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

3. 유통망 장악: 미국 최대 안경 체인 '렌즈크래프터스(LensCrafters)'와 세계적인 선글라스 전문점 '선글라스 헛(Sunglass Hut)' 등 150개국에 뻗어 있는 소매 유통망을 직접 운영한다. 심지어 미국 양대 시력 보험사 중 하나인 'EyeMed'까지 소유해, 시력 검사부터 안경 구매까지 소비자의 모든 경로(Patient Journey)를 통제한다.


에실로룩소티카에 맞서는 '관련 기업'들의 생존기

에실로룩소티카의 독주 속에서도 기술력과 명품 브랜딩을 앞세워 각자도생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① '광학의 자존심' 자이스(Zeiss)와 호야(Hoya) 렌즈 시장에서는 독일의 칼 자이스(Carl Zeiss)와 일본의 호야(Hoya)가 에실로룩소티카의 독점에 균열을 내고 있다.

  • 호야(Hoya): 일본 정밀 광학의 자존심으로, 글로벌 안경 렌즈 시장에서 약 1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의료용 내시경 등 첨단 의료 기기 분야에서의 기술력을 안경 렌즈에 접목해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 중이다 .

  • 자이스(Zeiss): 카메라 렌즈로 유명한 독일의 자이스는 약 3%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렌즈 시장에서의 브랜드 충성도는 압도적이다. 에실로의 물량 공세에 맞서 '초정밀 광학'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로 승부하고 있다 .

② '패션의 반격' 케링(Kering) 그룹 구찌(Gucci), 생로랑(Saint Laurent), 발렌시아가(Balenciaga) 등을 보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Kering)은 과거 룩소티카 등에 라이선스를 주던 관행을 깨고 '독립'을 선언했다.

  • 자체 법인 '케링 아이웨어(Kering Eyewear)'를 설립하여 기획, 디자인, 유통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에실로룩소티카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다. 현재 구찌 안경테는 시장 점유율 7%를 차지하며 단일 패션 브랜드로는 레이벤(4%)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

③ '그들만의 리그' 콘택트렌즈 4대 천왕 안경테 시장과 달리 콘택트렌즈 시장은 미국 기업들이 철옹성을 구축했다.

  •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아큐브(Acuvue)' 브랜드를 앞세워 전 세계 콘택트렌즈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 .

  • 그 뒤를 알콘(Alcon, 데일리스), 쿠퍼비전(CooperVision, 바이오피니티), 바슈롬(Bausch & Lomb)이 추격하며 4개 회사가 글로벌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들의 높은 기술 장벽과 브랜드 파워에 막혀 내수 시장 방어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

한국 안경산업, '세계 2위'의 영광은 어디로 갔나

글로벌 기업들이 브랜드와 기술로 몸집을 불리는 동안, 한국 안경 산업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대구는 이탈리아 벨루노, 일본 후쿠이, 중국 원저우와 함께 세계 4대 안경 생산지로 꼽혔다. 1995년 수출 2억 달러를 돌파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결정적인 패착 3가지:

  1. ①중국발 저가 공세: 1990년대 후반,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시장에 진입했을 때 한국 기업들은 '브랜드'가 아닌 '가격'으로 맞불을 놓으려다 공멸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안경 생산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

  2. ②영세성의 굴레: 안경 산업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묶이면서 대자본의 유입이 차단됐다. 이는 R&D 투자 부족과 마케팅 부재로 이어졌고, 결국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 'K-브랜드'를 탄생시키지 못했다 .

  3. ③트렌드 실기: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뿔테 열풍' 당시, 금속테 제조에만 특화되어 있던 국내 업체들은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 그 틈을 타 중국산 저가 뿔테가 한국 시장까지 잠식했다 .

현재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와 같은 국내 하우스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며 선글라스 시장 점유율 4%를 기록하는 등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지만, 산업 전반의 기초 체력은 여전히 약하다.

200조 원 시장, 스마트 글라스가 변수

글로벌 아이웨어 시장은 인구 고령화와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근시 인구 증가로 2029년까지 연평균 2.6% 성장, 1,722억 달러(약 230조 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

이제 전장은 '스마트 글라스'로 옮겨가고 있다. 에실로룩소티카는 메타(페이스북)와 손잡고 '레이벤 스마트 글라스'를 출시하며 테크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한국 안경 산업이 단순 하청 기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융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도약할 것인가.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동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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